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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FOCUS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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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남은 10월, 영화는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기억했나

2026.10.02 · 장민혜

[씬포커스 = 장민혜 기자] 가을을 이야기하는 영화에는 으레 낙엽과 이별, 쓸쓸한 사랑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10월은 그렇게 낭만적인 달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10·19사건,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1979년 10월 16일 시작된 부마민주항쟁과 같은 달 26일의 10·26 사건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벌어진 사건들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화 역시 이 순간들을 여러 방식으로 기록해왔다. 누군가는 당시의 증언을 카메라 앞에 불러냈고, 누군가는 역사적 기록 사이의 빈틈을 극영화의 상상력으로 채웠다. 10월, 스크린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몇 장면을 다시 들여다본다.

10월 16일 — 《10월의 이름들》(2021)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부산과 마산으로 확산된 부마민주항쟁은 20일까지 이어졌다. 《10월의 이름들》은 당시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와 재봉사, 버스기사, 사진기자, 전투경찰 등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그날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역사를 복원하는 다큐멘터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을 아카이브 자료와 참여자들의 기억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을 다시 기록하는 작품으로 소개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천 코멘트 |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몇몇 유명인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대신, 그날 거리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10월의 이름들》을 보고 나면 ‘부마민주항쟁’이라는 하나의 역사 용어 뒤에 얼마나 많은 개인의 하루와 기억이 존재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10월이라는 기획의 첫 작품으로 특히 좋은 이유는, 역사를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10월 17일 — 《유신의 추억: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2012)

1972년 10월 유신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 해산과 정치활동 중지 등을 포함하는 비상조치를 발표했고, 이후 개헌을 거쳐 유신체제가 성립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0월 유신을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과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단행된 초헌법적 비상조치로 설명한다. 《유신의 추억》은 이 시대를 기록영상과 증언을 통해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천 코멘트 | 10·26을 보기 전에, 유신체제부터 보고 싶다면

1979년 10·26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그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왜 1979년의 정국이 그토록 격렬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 ‘유신’이라는 체제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시대를 만들었는가를 먼저 바라보게 한다. 뒤이어 《10월의 이름들》과 《남산의 부장들》을 본다면 1972년에서 1979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연결해서 볼 수 있다.

10월 19일 — 《동백》(2021)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여수·순천 10·19사건이 시작됐다. 이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동백》은 당시 가족을 잃은 노인과 사건에 얽힌 다음 세대의 만남을 통해 오랫동안 이어진 상처와 기억을 다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천 코멘트 | 역사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을 보고 싶다면

《동백》이 바라보는 것은 전투 그 자체보다 사건이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은 기억이다. 역사책에서는 몇 페이지로 끝날 사건이 한 가족에게는 평생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의 형태로 보여준다. 사건의 전체 경과를 공부하기 위한 작품이라기보다, 역사적 폭력이 개인과 다음 세대에 남기는 흔적을 바라보는 작품으로 접근하는 편이 어울린다.

10월 26일 — 《남산의 부장들》(2020)

1979년 10·26 사건으로 향하는 40일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되, 실존 인물의 이름을 바꾼 인물들을 통해 사건이 벌어지기 전 약 40일간 권력 내부의 관계와 갈등을 극영화로 재구성한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만 여러 장면과 인물의 심리는 영화적으로 각색돼 있다는 점을 전제로 볼 필요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천 코멘트 | ‘그날’보다 ‘그날까지’를 보고 싶다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영화가 긴장감을 만드는 것은 10월 26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도달했는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 당일은 갑자기 떨어진 결론이 아니라 영화가 40일 동안 쌓아온 긴장의 종착점이 된다. 다만 실제 인물의 정확한 동기를 확정하는 기록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극영화라는 점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10월 26일 — 《그때 그 사람들》(2005)

10·26, 바로 그 하루

《남산의 부장들》이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펼쳐놓는다면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시간의 폭을 크게 좁힌다. 영화는 주로 1979년 10월 26일 당일을 따라가며 대통령 암살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블랙코미디와 풍자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두 영화는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인물과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뚜렷하게 다르다. 다음

추천 코멘트 | 같은 역사가 감독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면

《남산의 부장들》과 나란히 놓았을 때 특히 흥미롭다. 하나가 권력 내부의 긴장을 축적해가는 정치 드라마라면, 《그때 그 사람들》은 역사적 인물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고 혼란스러운 인간으로 끌어내린다. ‘역사영화는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가, 아니면 감독의 시선을 보여주는가’라는 질문까지 함께 던져볼 수 있는 작품이다.

10월 26일, 그리고 그 이후 — 《행복의 나라》(2024)

10·26 사건 관련 재판

《행복의 나라》는 10·26 사건 자체에서 한 걸음 뒤로 이동한다. 김재규의 부하 가운데 군인 신분이었던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 ‘박태주’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건 이후의 재판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 실제 박흥주는 군인 신분으로 단심제가 적용됐으며,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다. 연합뉴스

추천 코멘트 | 총성이 멎은 다음을 보고 싶다면

역사적 사건은 발생한 시각에 끝나지 않는다. 누가 책임을 지는지,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권력이 어떤 과정에서 등장하는지까지가 그 사건의 후속 역사다. 《행복의 나라》는 그래서 《남산의 부장들》이나 《그때 그 사람들》의 ‘후일담’처럼 이어서 보기 좋은 작품이다. 다만 재판 장면과 인물 관계에는 상당한 극적 재구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실제 재판 기록과 영화의 서사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마무리 문장

10월의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한 달의 달력 안에 서로 다른 시대의 균열이 겹쳐 있다. 1948년 여수와 순천에서, 1972년 서울에서,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그리고 다시 서울 궁정동에서 역사는 방향을 바꾸었다.

영화는 그 순간을 그대로 되돌려놓을 수 없다. 다만 기록되지 못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고, 이미 알려진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때로는 역사책에서 한 문장으로 지나쳤던 사건의 뒤편을 상상하게 한다.

올해 10월에는 낙엽이 아니라, 스크린에 남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장민혜 기자 contact@scenefocus.kr